“모든 이에게 억압이 아닌 평화를”

[콜트콜텍 독일원정]뜨거웠던 9일, 투쟁은 계속된다

프린트하기

오류보고

2009-04-05 21시04분 천윤미

노동자 외면하는 악기는 필요 없어 "노! 콜트!"

원정단은 4일 오전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뮤직메세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메세 앞을 지나가는 차량들은 “우리 투쟁을 지지하는 경적을 울려 달라”는 원정단의 선전물을 보고 경적과 함께 “노! 콜트!”를 외쳤다.

메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콜트 노동자들의 기타가 다시 아름다운 선율을 내도록 음표를 그려 달라”는 원정단의 호소에 쉼표만 들어있던 악보에 하나 둘 음표를 그려 넣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가 온다는 소식을 알리러 온 티베트 승려들도 음표를 그리며 “모든 이에게 억압이 아닌 평화를”기원한 후, 원정단원 한 명 한 명의 귀에 민들레를 꽂아주기도 했다.

콜트 노동자들의 기타가 다시 아름다운 선율을 내길 바라며 음표를 그려넣고 있는 시민

오후 1시 30분부터 원정단의 투쟁을 정리하는 집회가 메세 광장 한편에서 열렸다. 그동안 원정단 투쟁을 지원해 온 이들이 함께했다. 김기덕 단장은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름에도 박영호는 아직도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올 때 너무 많은 기대하지 말라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함께해줘서 원정단 투쟁을 잘 할 수 있었다. 다시 한국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현지 유학생은 “독일에서 원정단과 만나 함께 한 날들은 뜻 깊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탄압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며 이 곳 독일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모든 이에게 억압이 아닌 평화'를 기원한 라마승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는 “많이 못 도와준 것에 대해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도 이곳에서 노동자로 지내고 있지만, 한국 노동자들이 당하는 탄압은 너무 심하다. 이불 속에서도 원정단의 투쟁에 대해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우리 모두 ‘노 콜트’를 계속 외치자”고 말했다.

콜텍 노조 이인근 지회장은 “지난 9일 동안 원정단 투쟁은 독일 현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투쟁은 이제 한국에서 다시 이어질 것”이라며 “이 곳 독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국제 연대에 힘입어 박영호 사장이 무릎 꿇는 날 까지 투쟁할 것이다. 박영호가 아무리 돈 많고 배짱 있다 해도 우리 노동자들의 뚝심만큼은 아니다. 독일 노동자들의 권리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우리 역시 치열하게 투쟁해서 반드시 노동자의 권리를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콜트 부스를 찾았으나, 이미 사장은 자리를 떠났고 직원들만 있었다. 콜트에 OEM을 주는 아이바네즈와 팬더 역시 일반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인터뷰에 응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콜트 기타 만드는 '바보들'의 독일 나들이
[기고] 이인근 전국금속노동조합 콜텍 지회장
09.04.02 08:31 ㅣ최종 업데이트 09.04.02 08:31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2009년 3월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국제 악기쇼 현장에 
콜트콜텍 투쟁을 알리기 위해 원정투쟁을 떠났습니다. 이 길에는 한국의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도 함께 했습니다. 독일 원정 투쟁에 함께 한 콜텍악기 이인근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만든 기타.
ⓒ 노순택
콜트콜텍

하얀 설원 저 산 깊은 곳 나뭇가지에 활짝 핀 눈꽃 속에 우리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묻어 버릴
수는 없을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듯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우리들의 이 투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그 끝이 있겠지만 아무리 걸어도 이 길의 끝은 보이질
 않는다.

 

길거리에서 천막에서 철탑 위에서 헤매다보니 어느덧 또 한 번의 춥고 힘든 겨울이 지나가고
세상의 모든 식물과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은 왔지만,
자본의 탄압 아래 신음하는 노동자의 가슴 속에는 세상의 봄도 비껴가는 듯 여전히 찬바람만이
맴돌 뿐이다.

 

2년의 투쟁 기간!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시간이었지만 콜트·콜텍의 자본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노동자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지난 시간 동안 노동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죽는 것
말고는 해 볼 수 있는 투쟁은 모두 해 보았지만, 콜트·콜텍의 자본은 살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이 노동자들을 더욱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지난 2년의 투쟁으로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은 모두 지쳐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일하고
싶다"는, 아니 반드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CORT' 기타에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피울음소리를 아름답고 환상적인 선율로 바꾸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지친 몸뚱이를 다시
추슬러 세계적인 악기 쇼가 열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팔자에 없는 독일 나들이를
떠나려한다.

 

 
기타 제조회사 콜트˙콜텍의 노동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은 3월 4일 오후1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회사 측의 부당한 해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김환
콜트콜텍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래 전 한 축구 선수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나라와 도시 이름이다.

 

노동자로서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동지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준 노동자들의 피 같은 소중한 여비로, 콜트·콜텍 자본의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탄압을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해 우리는 그 악기 쇼 행사장을 향해 팔자에 없는 독일
나들이를 떠난다.

 

10년! 20년!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혼을 심고, 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기타를 팔아 1
200억원대의 갑부가 된 콜트·콜텍의 박영호 사장을 전 세계의 음악인과 악기제조인, 그리고
 악기 판매상에게 알리기 위해 비록 어렵고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우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는 많은 동지들의 뜨거운 가슴을 안고, 얼굴색도, 언어도 다른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간다.

 

십수 년 창문 하나 없고, 나무먼지로 뿌연 공장안에서 하루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화장실
한 번 맘 편히 가보지 못했던 그 곳의 노동자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몸뚱이가 망가져 가고 있는 것조차도 모른 채
 오로지 회사의 발전이 우리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던 그 시절.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삶을 살았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바보들이 독일로 간다. 그 바보들이 살아온 그 바보 같았던 삶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CORT' 기타의 그 소리는 바로 그 바보들의 울음소리임을 알리기 위해…….
이 바보들이 울음소리를 멈추고 아름답고 황홀한 선율로 노래할 수 있게 바꾸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임을 호소하기 위해 나는 팔자에도 없는 독일 나들이를 떠난다.

 

이들은 왜 독일원정길에 올랐나

전 세계에 유통되는 기타의 1/3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기타 한 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창문 하나 없이 꽉꽉 닫아놓은 공장 안에

쉴 새 없이 알을 까내야 하는 양계장의 닭처럼 시름시름 병들어 가던 사람들이 있습니
다.
기계톱에 손가락을 잘리고,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유기용제를 마시며 일하다
기관지염과
 천식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쁜 자개 문양을 달고 전 세계로
나가는 기타들을 볼 때면 흐뭇해하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여년 밤낮없이 기타만 만들던 사람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이들의 노동을 통해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은 12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습니다. 2006년 기준 한국부자 순위 120위입니다. 그러나 회사는 1993년 인도네시아
공장과 1999년에는
중국 공장을 설립하고는 천천히 한국 내 생산 라인을 축소시켜 나갔습니다. 2007년 4월에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 했고, 2007년 7월에는 대전 계룡시에 있는
콜텍악기를 위장폐업하고 남아 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해 2007년 12월 콜트악기 노동자 이동호 씨가 분신했지만, 아
랑곳 않고 2008년 8월에는 인천 콜트악기마저 위장폐업하고 말았습니다. 갈 곳 잃은
이들은 문 닫힌 공장을 지키며 2년여에 걸쳐 싸우고 있습니다.

 

2006년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기 전까지는 아침 7시 30분까지 서로 경쟁하듯
나와 일하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2006년 노조가 만들어지고 12년 만에 가
장 높게 임금인상이 되었는데 이 때 일당이 2006년 최저임금 시급보다 백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한 달여 동안 한강변에 있는 수십 미터 송전철탑에 올라 고공단식 농성도
해봤고, 본사점거농성을 들어갔다가 곧바로 출동한 경찰특공대들에게 진압당해
전원 경찰서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부디 공장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일하며 아름다운 악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소망이 이 이번 원정투쟁을 통해 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송경동 시인 /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노동자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콜트는 기타 만들 자격 없다”

[콜트콜텍 독일원정] 콜트 부스 진입후 현지 반응 뜨거워

프린트하기

오류보고

2009-04-04 09시04분 천윤미

'콜트는 기타 만들 자격 없다' 박영호와 콜트를 고발한다.

3일 방문한 뮤직메세에서는 지난 2일 원정단이 콜트 부스에서 기습 시위를 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있었다.

뮤직메세를 취재하는 내내 “어제 여기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장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여기까지 오냐”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기타업체 직원은 “박영호 사장, 노동자에게 잘해라. 음악 만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울리면 안된다”고 밝혔다.

원정단에 대한 관심과 성원이 느는 만큼 뮤직메세 측의 간섭과 감시도 늘었다. 뮤직메세 앞에 선전 부스를 만들 땐 선전물 하나하나 부착하는 일까지 경비원에게 간섭을 받아야 했다.
원정단이 메세를 향해 외치는 구호를 녹취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또 이들은 “이곳은 메세 땅! 자리로 돌아가라”며 밀쳐내는 등 원정단이 뮤직메세 소유지로 들어오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지 당하는 선전전'

한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회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소음이라고 항의가 들어오면 그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오전 10시부터 뮤직메세 방문객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던 원정단원은 방문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선전물을 받아든 시민들 중 일부는 “어제 당신네 투쟁이 신문에 나왔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누구나 아는 큰 신문에서 한국노동자가 어떻게 싸우는지 알려줬다”며 “나는 당신들의 싸움을 지지한다. 지금 메세를 오가는 사람들 중 몇몇이 콜트 아웃 버튼을 달고 다니는 것을 봤다”고 덧붙였다.

오후에는 중식집회가 열렸다. 콜텍 노조 이인근 지회장은 “어제 콜트 부스에 들어갔다. 잘 전시된 기타를 보니 가슴이 울컥하더라. 사장이 공장을 닫지만 않았다면 그 기타들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을 기타”라며 “반드시 이길 것이고 이겨야만 한다”고 주먹을 쥐었다.

원정단을 방문한 재독한인여성회는 “과거 방직공장 투쟁 때 우리가 메세 앞에서 유인물 나눠줬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소수로 타국에 있지만 절대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이날 중식집회에서는 문화노동자 서기상, 정한별씨 공연이 있었다. 무심히 길을 걷던 시민들이 이들에게 모여들었다. 시민들 중 일부는 “어제 한국노동자들 나오는 것 봤다. 멋졌다. 콜트는 기타를 만들 자격이 없다”며 주변 시민들에게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원정단이 메세 건물로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광장 끝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를 넘어서면 연행된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직접 선전물을 갖다 주겠다”고 자원하기도 했다.

어제와 달리 제지당하는 '쉼표' 퍼포먼스

문성원씨는 자신이 준비한 퍼포먼스가 경비에 의해 무산돼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 씨는 “어제는 하도록 놔두더니 오늘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원정단과 함께 있기 때문일 거라”며 분을 삭였다.

이날 원정단은 뮤직메세측으로부터 “선 넘지 말라, 현수막 딴 데 걸어라”등의 감시와 간섭을 받았지만, 원정단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에 힘을 얻었다. 원정단원들은 “내일 이면 메세가 끝난다. 그러나 여기서 긴장 풀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 아니 한국에서도 박영호와 계속 싸워야한다”며 촛불집회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촛불이 밝혀지고

자전거 도로를 넘으면 사유지라 연행한다는데...

'Cort' 이 이름을 어찌할까? 선전부스를 만들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노 콜트! 아웃 콜트!” 콜트 부스에 진입

[콜트콜텍 독일원정] 우리는 일하고 싶다

2009-04-03 09시04분 천윤미

"NO COrt, Cort Out!"을 외치는 원정단원을 제지하려 경비대가 달려들고 있다

2일 오전 11시 30분, 뮤직메세 내 콜트 전시 부스에 원정단이 나타났다. 삽시간에 콜트 부스 주변에 나타난 원정단이 겉옷을 벗자, 노란색 조끼가 드러났다. 원정단은 구호를 외치며 선전물과 콜트 박영호 사장이 얼굴이 새겨진 전단지를 허공으로 날렸다.

콜트 부스 앞에서 바이어를 만나던 박영호 사장과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박 사장이 몸을 피하는 순간, “노 콜트! 노 콜트! CEO 박영호!"를 외치는 원정단원들을 뮤직메세 경비대가 저지했다. 자신들 보다 한 뼘은 더 큰 경비대가 원정단원의 옷깃과 가방을 부여잡고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뮤직메세 방문객들이 바닥에 떨어진 수배전단지와 선전물을 주워서 읽기 시작했다.

출동한 경찰과 경비대가 ‘원정단’을 끌고 가자, 원정단의 선전물을 읽던 방문객들이 원정단을 대신해 경비대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원정단이 건물 내 이동파출소로 가는 내내 방문객들은 “한국 노동자다. 콜트 사장이 나쁜 거다. 심하게 다루지 마라. 풀어줘라”고 앞 다투어 말했다. 뮤직메세 경비대는 원정단의 사진을 촬영한 기자들까지 건물 내 파출소로 데리고 가 신분확인을 하기도 했다. 원정단원들의 여권과 출입증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원정투쟁 첫날 조언을 구했던 퀸젤 변호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원정단원들은 오후 1시 경에 모두 풀려났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내일은 오늘 보다 더 힘차게 투쟁" 북은 울리고

콜트 노조 김성일 조직국장은 “어제 사장이 ‘한국 공장은 절대로 다시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제 우리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고 마음을 열어주었다면 콜트는 망신살이 뻗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안 된다는 몰상식한 사고방식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제 2의 제3의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아이가 전에는 콜트를 자랑스러워 했다. 세계에 내놓는 기타를 만든다고. 근데 지금은 개 같은 사장이라고 한다. 우리 사정을 알 만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박영호 사장은 지금이라도 공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백번 사죄하고 다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원정단의 뮤직메세 진입 소식은 뮤직메세 참가업체와 방문객, 바이어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됐다. 많은 이들이 뮤직메세 광장을 지나 갈 때면, 원정단에게 손을 흔들고 ‘노 콜트’가 새겨진 버튼을 받아갔다. 또 이들이 앞장서서 마이크를 잡고 외국인들에게 각 나라의 말로 원정단의 투쟁을 알려주었다.


투쟁기금도 모금되었다. 메세를 방문했다가 원정단의 투쟁 소식을 알게 된 한국인과 독일인이 “타국까지 와서 고생인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 것뿐이라서 미안하다”며 선뜻 자신들의 지갑을 열었다.

오후부터는 뮤직메세 방문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이 시작되었다. 방문객들은 “음악소리와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커서 메세 건물에서는 울린다. 소리를 약간 줄이면 잘 들릴 것”이라고 전했다. 또 “오늘 오전 당신들의 행동을 지지한다. 당신들이 못가면 내가 선전물을 뿌리겠다.”며 원정단에게 선전물을 받아가기도 했다. 다른 방문객들 역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버튼을 다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 당신네 사장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반복해 말했다. 심지어 원정단에게 시끄럽다며 위협하는 독일인에게 “이 사람들은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이 계속 행패를 부리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CEO 작곡의 '콜트' 악보는 계속 쉼표를 달고 있다. 이유는 콜트가 노동자들의 공장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뮤직메세 앞 퍼포먼스

이날 원정단에 합류한 유학생 문 성원 씨는 자신이 직접 준비한 퍼포먼스를 뮤직메세 광장에 설치했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성원 씨는 “이 악보는 계속 쉬는 음표를 달고 있다. 이유는 콜트업체가 노동자들의 공장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연주를 하고 싶어도 쉬어야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 없다. 나는 박영호 사장이 강제적으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 퍼포먼스를 보고 달려와 함께 사진을 찍고 버튼을 옷깃에 달았다.

오후 7시 부터는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 “몇 안 되는 소수일지라도 힘내서 우리 공장을 돌려받자!”는 목소리가 뮤직메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원정단의 모든 것을 돕고 있는 한국유학생들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당원들이 참가했다. 한편 독일 금속노조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독일 금속노조 깃발을 선전전 자리에 놓을 것에 대해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개도 "No Cort!" 목걸이를 두르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독일 금속노조 프랑크푸르트 지회 카틴카 부지회장은 “노동자 탄압으로 만든 기타는 기타가 아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지금 이리로 오라! 콜트 부스에서는 알 수 없는 콜트가 저지른 잔혹한 일들을 바로 이들 노동자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며 행인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원정단원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내일은 오늘 보다 더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며 “박영호 사장의 생각과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투쟁은 이후 더 빡쎄질 것”이라고 뮤직메세에 경고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콜트콜텍 독일원정] 박영호를 만나다

우린 공장 돌릴 때까지 투쟁한다

2009-04-02 09시04분 천윤미

"박영호 수배" 피켓을 들고 있는 원정단

뮤직메세(악기쇼)가 4월 1일 오전 9시부터 열렸다. 원정단은 이날 오전 8시부터 뮤직메세 앞 광장인근에서 뮤직메세 방문객들과 지나가는 독일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장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서 사장을 만나러 독일에 왔다. 우리 이야기를 많이 퍼뜨려 달라, 지지해 달라”며 선전물을 나눠주었다.

오전 11시 원정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창문하나 없어 나무 먼지를 마시며 일해 왔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최저임금 이었지만,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발전할 것이고 우리 노동자들 역시 잘 살 것이란 생각에 묵묵히 일해 왔다. 그러나 200만원으로 공장을 세운 박영호 사장이 한국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어도 우리는 최저임금을 받아왔다. 심지어 한 여성 노동자는 관리자의 탄압에 자살까지 하게 됐다. 이것이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이다”며 그동안 당해온 탄압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외국인들이 이인근 지회장과 원정단 선전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기자회견, “원정단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 지회장은 “이런 상황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콜트 박영호 사장은 오히려 공장을 폐쇄하고 공장을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만나자고 애걸복걸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손해배상 청구였다. 우리는 사장을 만나기 위해 40미터 상공의 송전탑에 올라가 한 달 동안 단식을 했지만, 사장은 우리를 버렸다. 그래서 오늘 독일에서 만나 우리의 공장을 돌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고 소리쳤다.

콜트 노조 김성일 조직부장은 “노동자 한 명이 노조를 인정해 달라며 분신을 했다.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 6개의 법인을 갖고 있는 콜트는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콜트는 제품의 5%만 한국에 팔고 95%는 전 세계에 수출한다. 우리가 아무리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말해도 박영호 사장은 세계에 수출하는 95%를 믿고 한국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 곳 뮤직메세 방문객들이 콜트 업체와 계약을 맺는다면, 그것은 간접적으로 한국 노동자들을 죽이는 것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국제연대도 이루어졌다. 국제미디어 및 엔터테이먼트 산별 노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어렵다고 하지만, 그 경제 위기는 우리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한 자본가들이 스스로 판 무덤”이라며 “한국 노동자들은 그것에 맞서 몸소 투쟁하는 것을 지난 G20 반대 집회에서 보여줬다. 또 오늘 바로 이곳 푸랑크푸르트 뮤직메세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고용의 문제를 갖고 싸우는 이들의 투쟁에 우리가 동참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열리고 뮤직메세 취재진 일부가 원정단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중 뮤직메세 경비원들이 원정단에게 다가와 “콜트 사장이 이인근, 김성일을 만난다고 한다. 어떻게 할 건지 말해달라”고 전했다. 이에 원정단은 “우리는 금속노조 전 조합원을 대표해 현장 노동자들과 온 것이다. 현장 노동자만 만나려는 것은 안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오후 2시경, 콜트 쪽에서는 “이인근, 김성일과 금속노조 1명씩만 만나겠다.”며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면담을 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

콜트 측과의 면담 장소는 뮤직메세 건물 외곽의 작은 회의실이었다. 콜트 쪽은 취재진을 거부하고 원정단 3인만을 만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노조는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들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우리가 시끄럽게 하니까 업체 계약률이 떨어질 것 같아서 면담을 하는 것 같았다”고 결과를 전했다.

독일에서 만난 콜트 박영호 사장은 “더 이상 공장 돌릴 일 없다. 포기하고 한국서 다른 걸로 협의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면담을 끝마친 원정단은 “사장이 공장을 돌린다고 할 때까지 뮤직메세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깡다구를 보여줄 것”이라며 사물놀이와 선전전을 진행했다. 뮤직메세가 문을 닫는 6시경에 광장을 나온 방문객들은 원정단의 사물놀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원정단이 권해주는 선전물을 받아갔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풍물놀이는 뮤직메세 광장에서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풍물소리는 뮤직메세 광장을 꽉 채웠다.


이날 원정단은 오후 9시까지 하루 정리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을 소중히 감싸 바람으로부터 촛불을 보호했다. 원정단은 “면담 결과가 실망스럽지만, 콜트 박영호 사장은 우리의 선전전에 신경이 곤두섰다. 우리는 박영호 사자잉 가는 곳엔 어디든 간다. 우리를 죽이면 죽이려고 할수록 우리는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촛불 정리 집회에는 독일 유학생들과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참여해 함께 촛불을 밝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고통 뮤지션들에게 알리겠다

[콜트콜텍 독일원정]투쟁단을 기억하는 독일 시민들

2009-03-31 07시03분 천윤미(moduma@cmedia.or.kr)

베르트람 씨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일이다”고 고개를 저었다.
늦은 저녁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인근,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에서 베르트람 리터씨를 만났다.

18년 동안 드러머로 활약하고 있는 베르트람 씨는 “내가 좋아하는 상표가 하나 있는데 내가 사용하는 악기를 노동자들의 눈물로 만든 것이라면, 나는 연주를 하면서 꺼림 직 할 것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는)안타까운 일이다”고 고개를 저었다.

연주를 하기 위해 클럽을 찾았다는 베르트람 씨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적힌 선전물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OEM 생산 방식으로 악기를 만든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방식은 악기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항의할 것”이라고 말하며 베르트람 씨는 “항의엽서를 같이 써도 되느냐”고 물었다.

클럽에서 같이 연주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야기 하며 손수 선전물을 나눠주던 베르트람 씨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용문제가 심각한데, 그것을 발생시킨 경제위기가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면 안된다. 나는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뮤지션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음악이 성공하려면 당연히 악기를 만드는 이들이 잘 되어야 한다”며 “한국의 기타 노동자들의 투쟁이 꼭 성공해서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프랑크푸르트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지난 28일 열린 G20반대 집회에서 진행했던 독일 원정단의 투쟁을 기억하고 있었다.

중앙역에서 콜트/콜텍 투쟁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는 원정단원.

30일 독일 원정단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과 대학, 하우프트 바크에서 선전전과 문화공연을 진행했다. 원정단이 가는 곳곳마다 ‘콜트 아웃’이 적힌 버튼을 달고 다니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 시민들은 “4월 1일 메세광장에서 보자. 당신들의 투쟁은 너무나 인상 깊다”고 반응했다.

이날 선전전에는 독일로 여행을 온 연극인 정한별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정 씨는 “기타를 처음 살 때 다들 콜트 사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OEM이 된 후 부터는 콜트를 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소리가 싸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오게 된 것은 아는 후배로부터 콜트 투쟁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라며 “기타 동호인들 사이에선 중국산 콜트가 안 좋은 것은 다 안다. 가격이 싸면 뭐하나 소리가 다른걸”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는 “콜트 대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돈을 조금 더 벌려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 기타 질이 떨어진다면, 많은 기타리스트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축소정책에 반대하는 월요시위 운동원들이 콜트/콜텍 투쟁을 소개해 주고 있다.

복지축소정책에 반대하는 월요시위 운동원들은 "콜트/콜텍 투쟁을 주말에 봤다. 당신들은 정말 대단하다. 노동자의 생존과 복지를 위협하는 것에 맞서 싸워서 꼭 이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콜트/콜텍독일원정③]공연과 선전전에서 만난 사람들
천윤미(moduma@cmedia.or.kr)

“정말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전 세계의 음악인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 하우프트 바크에서 만난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이 당황스러운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신을 오케스트라 단원이라고 밝힌 이 독일인은 콜트/콜텍 독일 원정단이 건넨 선전물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독일 오케스트라 단원, "믿을 수가 없군요"

30일, 독일 원정단은 독일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하우프트 바크에서 선전전과 문화공연을 진행했다. 원정단이 투쟁가를 틀고 문화공연을 선보이자 많은 독일시민들이 원정단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전물을 받아든 독일 시민들은 연신 콜트/콜텍에서 벌어진 노동탄압에 대해 사실여부를 확인하며 놀라워했다. 또한 원정단에게 계속해서 율동을 하라고 요구해, 원정단은 쉴 새 없이 자신들이 아는 모든 율동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원정단은 하우프트 바크 거리에서 뮤직메세를 알고 방문할 계획이 있는 독일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뮤직메세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탄압한 회사가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는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준 NO! Cort!(노! 콜트!) 버튼을 달고 그곳에 가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사업주에게 OEM을 주는 회사 제품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들은 “아무리 사장이 돈을 많이 벌어 재벌이 된다 해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한국에서 잘 나가던 공장을 없애고 다른 나라로 이전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2년 넘게 길에서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재벌이 아닌 망한 사람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모른다면 그는 기업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노동자들이 힘든 것이다”고 전했다.

콜트/콜텍 투쟁을 소개하며 한국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문화노동자 서기상 씨

오후 8시부터는 문화노동자 서기상 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어둑해진 하우프트 바크 거리에 한국 노동자의 투쟁 노래가 울려 퍼졌다. 원정단이 준비해 둔 초를 켰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서기상 씨의 나직한 목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독일인들이 하나 둘 늘어만 갔다. 원정단원들 역시 하나 둘 투쟁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힘차게 투쟁가를 부르는 단원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원정단은 첫 거리 선전전과 문화공연에 대해 독일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것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한편, 이날 정오 인터콘티넨탈 호텔 2층에서는 국제금속노련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가한 금속노조 정혜원 국제부장과 김기덕 원정투쟁단 단장은 국제금속노련 마르첼로 말렌타키 사무총장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콜트/콜텍 소식을 사전에 들었던 사무총장은 “국제 미디어 및 엔터테이먼트 산별 노련이 있다. 악기와 관련된 업체들이 가입되어 있으므로 국제적인 연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 연대는 필요하므로 우리가 악기 관련 노조에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산하 노조에 반드시 기사화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현재 독일 내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도 이런데 올 여름 때쯤에는 경제위기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국제금속노련 사무총장이 김기덕 단장에게 연대의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원정단은 “경제위기가 전 세계에 닥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더 어려워 지고 있다. 우리 역시 전 세계의 핍박받는 노동자를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 연대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국제 금속노련 산하 노동자들이 콜트/콜텍 박영호 사장에게 항의엽서를 보낸다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엽서를 보내주겠다”고 밝혔다.

국제 금속노련은 “원정단의 투쟁이 반드시 승리하길 바란다”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원정단의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원정단은 30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가와 인파가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선전전과 촛불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독일인들은 원정단이 전시한 콜트/콜텍 투쟁을 소개하는 현수막에 관심을 보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국제연대 만세! 안티 콜트!”

[콜트콜텍 독일원정]G20 반대 집회서 울린 국제연대

프린트하기

오류보고

2009-03-29 23시03분 천윤미(moduma@cmedia.or.kr)

G20 반대 집회 참가자들 “노동자 탄압하는 콜트 제품 안사겠다”

‘콜트/콜텍 독일원정단’(이하 원정단)은 28일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반대집회에 참가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모인 1만여 명의 노동자들과 원정단은 “경제위기 대가를 대신 치를 수 없다”, “노동자연대 만세”를 함께 외쳤다. 또한 유럽 노동자들은 ‘원정단’이 왜 독일까지 왔는지 설명하자, “노동자를 해고한 것을 취소하지 않으면, 콜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연대의 뜻을 밝혔다.


“국제연대 만세! 안티 콜트!”
‘한국의 콜트-콜텍 부당해고 노동자 투쟁단’의 투쟁에 높은 관심 보이는 유럽인들


28일, 구름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원정단’은 “오늘 집회에서 최대한 많은 엽서를 조직하자”는 다짐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10시부터 콜트/콜텍 상황을 알릴 전단지와 버튼을 한가득 챙겨들고 집회가 열릴 예정인 프랑크푸르트 보켄하이머로 갔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정단’은 한국에서 준비해간 우비를 챙겨 입었다.

보켄하이머 광장에는 이미 많은 단체들이 모여 있었다. ‘원정단’ 광장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려냈다. 선전물을 나눠주며 유학생들의 통역으로 콜트/콜텍 노동자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영어나 독일어가 안 되는 투쟁단은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총 동원해서, 그것도 안 되면 손짓 발짓으로 “우리가 기타를 만들다 해고된 노동자이고, 공장이 폐쇄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뮤직메세기간 동안 우리가 계속 그곳에 있을 테니 올 수 있으면 와달라고, 또 못 온다면 우리의 투쟁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유럽인들이 현수막을 든 ‘원정단’에게 다가와 “어디에서 왜 왔느냐? 당신네 나라는 이렇게 노동자를 탄압하냐?”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또 ‘원정단’이 나눠주는 버튼을 주변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며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유르겐 가이저 씨는 “ ‘나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박영호 사장을 만나야 한다.’는 요구에 연대한다.”며 불매 운동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프란쯔 파이퍼 씨는 “연대의 압력은 자본의 탄압보다 강하다”고 했으며 호르스트 빌헬름 씨는 “강도 같은 자본주의”라고 콜트/콜텍 사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 역시 ‘원정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현지 프리 라디오 취재원들과 취재 기자들은 노란비옷을 입고 현수막을 든 ‘원정단’을 향해 끊임없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들은 ‘원정단’이 사장을 만나러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기자들은 “사장은 한국에 안사냐?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해도 우리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회사를 폐업시키는 것은 드물다. 당신네들이 처한 상황이 한국의 일반적인 사례냐?”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이 많이 발전했다고 들었는데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하다는 사실은 처음이다.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고 유감을 전했다.

유럽 프리라디오 취재단이 콜트/콜택 투쟁에 대해 취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연신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례적으로 콜트-콜텍 투쟁 소개된 G20반대 집회
“경제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반대하는 우리와 당신들의 투쟁은 동일하다.”


현지 노동자들과 언론들의 관심에 투쟁단원들의 얼굴이 시종일관 밝았다. 이날 집회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한국유학생들이 함께 하며 ‘원정단’의 통역을 도왔다. 또 독일 금속노조 홀스트 문트 국제실장은 독일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콜트/콜텍 투쟁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제연대 만세! 안티 콜트!”

G20 반대 집회 행진이 시작되었다. 보켄하이머를 출발해 오페라하우스를 거쳐 로마광장으로 갔다. 프랑크푸르트의 주요 중심지다. G20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수막을 펼쳐들고 “경제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 우리는 너희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소리치며 행진했다. ‘원정단’ 역시 함께 행진했다. ‘원정단’이 현수막을 들고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며 행진하자,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도 각자 자신의 언어로 ‘인터내셔널 가’를 노래했다. 행진을 하는 내내 ‘원정단’을 만난 사람들은 ‘독일에 온 이유’를 물었고 ‘원정단’과 함께 외쳤다. “국제연대 만세! 안티 콜트!”


G20반대 집회 참가자들과 로마광장에 도착했다. 많은 인파를 헤치고 무대 쪽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빽빽이 찬 사람들로 인해 ‘원정단’은 무대 앞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원정단’은 로마광장 입구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비를 뿌리다가 태양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비가 내렸다.

순간, 무대 쪽에서 ‘콜트, 코리아’란 단어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한국의 부당해고 노동자들이 독일로 투쟁하러 왔다고 소개한 것이다. “노란 옷을 입은 한국 사람들을 주목하라, 기타 생산 업체인 콜트 사장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장을 폐쇄했고 공장을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빼갔다. 노동자들이 사장 얼굴을 보러 뮤직메세가 열리는 이곳에 왔다. 우리가 이 투쟁을 알리고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는 내용이 로마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독일에도 수많은 사업장이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다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낯선 한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콜트/콜텍 투쟁이 소개된 것이다. 홀스트 문트 국제실장은 자신의 일처럼 반가워하며 “지금 광장의 노동자들이 콜트/콜텍 투쟁을 관심 깊게 듣고 있다. 이젠 우리가 저들에게 직접 우리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투쟁단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광장을 오가던 수많은 유럽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선전물을 받아갔다. 또 ‘원정단’과 함께 사진을 찍자며 독일에 온 것을 환영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당신들의 투쟁은 대단 것이며, 우리는 당신들의 투쟁이 흥미롭다. 오늘처럼 중요한 집회에 소개된 당신들의 투쟁에 대해 자세히 알려 달라”며 ‘원정단’을 에워싸고 부탁하기도 했다. 독일 정치 당원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녹음하며 “한국 기타 생산 노동자들의 투쟁을 반드시 유럽 전역에 알리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르쿠스 하이저 씨는 “비인간적인 경제는 작동할 수 없다”며 “오늘 집회와 당신들의 투쟁은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집회 참가자는 “박사장, 나는 독일의 노동자입니다. 당신이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을 취소하시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네 제품을 사지 않겠소.”라고 강조했다. ‘원정단’의 모습을 찍던 헬무트 크로네 씨가 주위의 노동자들에게 소리쳤다. “우리에게 정의를!”

독일 노동자가 함께 현수막을 들며 투쟁단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이제 비행기를 탔다. 힘내자”

[콜트/콜텍 해외 투쟁①] 기타노동자들 독일 도착하다

프린트하기

오류보고

2009-03-27 07시03분 천윤미(moduma@cmedia.or.kr)

부당해고에 맞서는 기타노동자들이 독일 악기쇼를 찾아갔다. 콜트-콜텍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소리가 난다고 다 악기는 아니라고 한다. 노조혐오로 거리로 몰린 'Cort'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있는 한, 부당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Cort' 소리는 맑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비명일 뿐이다. 기타노동자들의 호소와 외침이 기타의 아름다움을 대신한다. 미디어충청은 기타노동자들의 삶의 노래, 생존의 노래를 독일 악기쇼 현장에서 생생히 전한다.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원정단. 콜텍 이인근 지회장, 금속노조 정혜원 국제부장,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김기덕 부지부장, 금속노조 박장현 교육위원, 콜트 김성일 조직부장, 문화노동자 서기상, 김성균.(왼쪽부터)

27일 집회 신고, 주말엔 독일 노동자 집회에 참가

11,500m 이상의 상공을 1800마일의 속도로 ‘한국의 콜트-콜텍 부당해고 노동자 투쟁단(단장 김기덕)’이 26일 독일에 도착했다. 좁은 의자에 몸을 뉘이고 엉덩이를 옴짝거리며 11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투쟁단, 이들의 투쟁을 돕기 위한 손길은 독일 현지에서도 이어졌다.

독일 시간으로 오후 7시가 약간 넘은 시간, 공항의 풍경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착한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분주했다. 낯선 독일에서 투쟁단이 처음만난 사람들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 투쟁단은 이날 오후 8시경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투쟁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투쟁단과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

숙소에 도착한 투쟁단은 투쟁계획을 점검했다. 이들은 27일 집회 신고를 시작으로, 현지 주민들이 많이 오가는 성당 인근과 프랑크푸르트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선전전과 문화공연, 촛불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28일 열리는 독일 집회에 참가해 독일 노동자에게 콜트-콜텍의 문제를 알려낼 계획이다.

"첫 해외투쟁, 경험 부족해도 이 투쟁 잘해보자"

사실 투쟁단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26일 정오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하물을 부치는 과정에서 문제에 부딪혔다. 투쟁단이 준비한 물품이 무게를 초과해 투쟁단원들은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한 후에야 탑승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화물용량초과로 인해 곤란해 하고 있는 원정단

12시간여만에 흡연을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내에 탑승한 투쟁단은 삼삼오오 모여 독일에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독일 현지 언론을 어떻게 조직해 낼 것인지, 콜트에 OEM을 주는 펜즈와 아이바네즈 등에 이들의 투쟁을 어떻게 알려낼 것인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김기덕 단장은 “이제 비행기를 탔다. 이번 원정 투쟁이 콜트-콜텍 노조가 이기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며 “다들 힘들텐데 우리 투쟁에 관심 갖고 도움주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 서로 힘내서 이 투쟁 잘해보자”고 단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문화행동 블로그
빨간도둑
Yesterday131
Today24
Total116,379

달력

 « |  » 2017.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