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10-08-02|30면 |40판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1780자



2년 전 크리스마스 무렵, 홍대앞 클럽 ‘빵’에서 시낭송을 한 적이 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를 위한 후원의 밤’이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클럽을 찾아들었고, 우리는 따뜻하게 공명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존재를 위로받았다. 내가 그곳에 가서 기타 노동자들과 잠깐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인연은 왜 나에게 온 것인가. 나는 언젠가 기타 소리로부터 위로받은 적이 있는 것이다. 기타를 만든 노동하는 손과 간접적으로 나는 연결되어 있었던 거다.

먹고 입고 쓰는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실은 그렇다. 우리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들 뒤에는 그것을 만든 노동하는 손이 있고, 다시 그 뒤에는 그것에 원료를 내어주는 자연이 있다. 이 모든 연결의 인연들이 일방적 착취관계가 아니라 ‘서로 잘 기대어 있을 때’ 세상은 유지되어 간다. 정의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이 대목이다. 정의는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잘 존재하기’ 위해 서로의 관계성을 돌보는 일이다.


처음 만난 지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삶은 어찌 되었는가. 그동안 그분들과 동고동락해온 지인이 전하는 바로는 실제적으로 해결된 문제가 없다고 한다. 300여명의 해고노동자들은 1200일이 넘도록 위장폐업과 탄압에 맞서 여전히 싸우고 있다. 최근 법원이 콜트콜텍 공장 폐쇄 및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불법적이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지난 10년간 기타를 팔아 한국에서 120위 재력가로 성장한 콜트콜텍 사장은 오히려 노동자 탄압을 가속화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개안이 요구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상식이 되는 때에 여전히 70년대 방식으로 노동자를 착취해 자신의 부를 축적하려는 이런 자본가의 얘기를 들으며 탐욕이라는 괴물이 인간을 얼마나 추하게 만드는지 다시금 몸서리쳐야 했다.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멋진 소식도 들었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에게 국제적인 연대의 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미국, 일본 등지의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악기를 만드는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한국의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국제적 연대 소식을 듣다가 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와우! 소리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이십대 중반 청춘의 시절, 내가 열렬히 환호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잭 데 라 로차와 톰 모렐로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지속적 연대를 표명한 소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사랑을 양심 없는 강자에 대한 생생한 분노로 표출하던 그들의 폭풍 같은 음악 속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춤을 추던 내 청춘의 한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시절 내 속의 분노와 연대해주던 그들이 오늘 가난하고 힘없는 한국의 기타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멋진 소식!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속속 연대하고 있다는 소식! 우울한 끝에 나는 하하하 웃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세상의 담벼락은 높지만 담벼락을 넘어 연대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이 여전히 세상의 한 녘을 지탱한다. 4년여를 끌어온 우리 기타 노동자들의 싸움이 올해엔 잘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연대해주시길. 인터넷 검색을 하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많으니, ‘키보드 예술가’로 동참해 컴퓨터 키보드를 기타의 현처럼 울려주시길.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고, 고통받는 노동이 있는 한 행복하기만한 소비는 없는 것이므로.
 



김선우 시인·소설가 lyraksw@hanmail.ne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한겨레]|2010-06-02|30면 |07판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1902자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해리 차핀은 기타를 ‘여섯 줄의 오케스트라’라고 노래했다. 그처럼 코드와 멜로디, 리듬 연주가 모두 가능한 기타는 피아노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악기이다. 나는 열여섯의 겨울방학에 동네 교습소에서 통기타를 배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곡을 연주한 노래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데, 수예점 아가씨와 연애중이었던 선생님은 후렴구를 꼭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고 바꿔 불렀다. 개학을 하면서 흐지부지 끝나버린 강습은 손끝에 박인 굳은살이 풀릴 때쯤 까마득한 기억이 되어버렸지만, 품 안에서 공명하던 소박하지만 신비로운 악기의 감각은 여전히 또렷하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선율 뒤에 천식과 난청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장인 정신으로 기타의 몸통을 사포질하고 자개 문양을 새겨 넣고 유약을 발라 닦은 뒤 줄을 조율해 완성하며 기쁨을 느끼던 노동자들이, 천막농성부터 점거농성, 삭발, 송전탑 고공농성, 그리고 분신에 이르기까지 필사적인 방법으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얼마 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홍익대 앞 라이브카페 ‘빵’에서 열리는 ‘콜트콜텍 수요문화제’에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되어 다녀왔다. 전자기타를 만드는 콜트와 통기타를 만드는 콜텍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가수와 작가들이 여는 작은 콘서트였다. 기실 나는 노래방에서나 겨우 꿈적꿈적 가무의 본능을 충족하는 촌스러운 세대인지라, 인디음악은 물론 클럽 문화에 익숙지 않다. 잘 모르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턱없는 오해를 할 수밖에 없다. 개성 강한 인디밴드들이 어떻게 노동자들과 ‘연대’하는가?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을 품은 채 지하 카페의 방음문을 열었다.


 그곳에 말로만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분신투쟁의 상흔을 치유중인 이동호씨, 1인시위 도중 돌진해온 회사차에 치여 상해를 입었던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 학교급식 보조일과 목욕탕·영화관 청소일을 해서 번 쌈짓돈을 털어 독일과 일본과 미국에서 열리는 악기쇼에 4차례나 원정투쟁을 다녀온 해고노동자들이 바로 거기 있었다. 무대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방종운씨는 크고 깊은 눈에 고운 마음결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현장에 돌아가는 걸 상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갑자기 울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꿈을 꿨어요. 꿈속에서 공장에 불이 난 거예요. 얼마나 놀라고 다급했는지 사장에게 달려갔어요. 우리 공장에 불이 났다고, 다 타버리기 전에 빨리 꺼야 한다고….”

 세계 기타 생산의 30%를 차지하는 회사를 경영하며 한국에서 120위 안에 드는 큰 부자가 된 사장에게, 위장폐업을 하고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넘긴 그에게, 고등법원에서 정리해고가 불법하다는 판결까지 내렸는데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신세를 ‘조졌다’며 완벽하게 외면하는 그 인물에게 그는 매달려 호소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며 총장 파면 사태를 경험했던 학생 가수 이랑이, 오전에 수요집회에서 군대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고 돌아온 가수 김철연이 함께 눈물짓는다. 예술과 노동이 얽히고설켜 분노와 희망의 난장을 벌인다. 놀이판에는 세대와 경험의 간극이 없다.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청춘을 바쳐 부르는,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뜨거운 사랑 노래가 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노골적으로 광고하겠다. 다음 카페 ‘산들바람’(cafe.daum.net/sntj1)을 검색하면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만들어 파는 유기농 된장과 고추장, 친환경 수세미를 살 수 있다. 그것이 일터를 빼앗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는 밑천이다. 시식해보니 매실고추장은 의지만큼 맵싸하고 전통된장은 의리만큼 구수하다. 많이 많이 주문해 드시길 바란다.




김별아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어느 노동자의 출정가(出征歌)

김정대 (신부, 천주교 예수회, 노동사목)



1월 초였을 거다. 내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그것도 두 통에 걸쳐 전달되었다. 내용은 올해도 열심히 투쟁하겠으니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과 더불어 미국으로 원정 투쟁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출정가이다. 전화번호가 내 휴대전화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발신자가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쉽게 콜트 노동조합의 방종운 지회장임을 알 수가 있었다. 며칠 여유를 두고 문자를 보냈으면 통화라도 해서 원정투쟁 비용으로 조금이라도 후원금을 보낼 수 있었겠지만 이미 늦었다.

콜트악기는 1970년대에 세워진 기타를 제조하는 업체로서 부평 4공단에 공장이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자회사를 설립해서 사업을 확장하였다. 대전에는 콜택이라는 다른 공장을 가지고 있다. 콜트는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생산할 정도로 견실한 악기 제조업체이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단기손실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2007년부터 폐업을 하며 20년 가까이 혹은 20년 이상된 숙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였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2008년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냈다.

이뿐만 아니다. 2009년에는 해고무효확인 행정소송에서도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상급법원에 판결을 신청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과의 성실한 대화를 거부한 상태이다. 이 노동자들의 복지투쟁은 이미 1100일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한겨레21을 통해서 콜트 노동자들이 미국 원정투쟁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실렸다. 원정투쟁단은 미국 켈리포니아의 에너하임에서 열리는 악기쇼(1월 14-17일)에 간 것이다. 기타 시장의 30% 정도를 생산하는 콜트도 당연히 이곳에서 자신들이 생산한 악기의 우수성을 홍보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생산할 주문을 받기도 한다. 콜트 노동자들은 작년에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열린 악기쇼에 가서 피켓팅을 하였다. 이들이 자신들과 무관해 보이는 악기쇼에 가서 원정투쟁을 한 이유는 부당해고와 관련한 콜트의 비윤리적인 기업 활동을 알려 좀 더 윤리적인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윤리적인 기업은 당연히 부당해고를 철회하여야 한다.


지난해 7월 23일 새벽 전국금속노동조합 콜트악기지회의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고 있는
사측 관리자와 용역업체 직원들. <사진제공ㆍ콜트악기지회>

콜트 노동자들은 지난 해 원정투쟁과 달리 올해는 좀 더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우선은 톰 모렐로와 같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콜트 노동자를 지지하는 연대를 이끌어 냈다. 이들은 단지 부와 인기만을 좇는 음악가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악기가 정의롭지 못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콜트에서 정의와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연대하였던 것이다. 이 투쟁에 동행한 기자는 이들을 “인간의 본능을 처절하게 대변하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라고 한다. 그들은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연대이다.

또 하나 실질적인 성과는 콜트의 최대 거래처인 펜더로 하여금 콜트의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토록 한 것이다. 펜더는 미국 제1의 기타 브랜드로서 콜트에 주문자생산(OEM) 방식으로 콜트에 하청을 주는 최대 거래처이다. 미국은 소비자들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사회이다. 펜더 역시 소비자들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톰 모렐로와 같은 음악가들은 펜더에 납품을 하는 콜트의 부당노동행위 이슈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펜더에 편지를 보냈다. 그를 비롯한 펜더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음악가들이 펜더를 사지 말자고 한다면 펜더는 적잖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펜더가 진상조사를 벌이는 것은 자신의 기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펜더가 콜트에 부당해고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하청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콜트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펜더의 진상조사는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성과이다.

콜트 노동자들은 이처럼 원정투쟁을 통해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 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국내적 연대활동에 대해서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부당해고를 당한지 거의 3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문제가 단지 회사와 노동자만의 문제라고 외면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부당해고 문제는 단지 노동자와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이다. 기업은 단지 이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특히 인간화에 도움을 주는 것도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당해고를 자행하여 비인간적인 노동행위를 한 콜트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콜트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과 사회 시민 단체,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뿐만 아니라 지식인과 일반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장기간의 투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심리적 불안과 가족들 사이의 갈등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연대와 콜트 악기에 대한 불매운동과 노동자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것과 같이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도 아름다운 연대를 실천해 보자. 이 연대를 통하여 장기간 투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콜트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올바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잊지 말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삶이 힘겹지만

옳은 것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싶다”

ㆍ방종운 콜트악기 노조지회장…힘겨운 복직투쟁 계속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 시절 인연을 맺게 된 인천 부평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땅에선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게 힘들더라구요.”

서울이 고향인 방종운씨(52·사진)는 20대 중반 ‘당시 잘 나가던’ 대우자동차에 취직하면서 부평구에 정착하게 됐다. 생산라인에 근무하던 방씨는 회사의 인사정책에 반기를 들다 입사 4년 만에 해고됐다.

운이 좋았는지, 대우차 해고 5개월 만에 부평에서 일렉(전자)기타를 생산하는 콜트악기에 입사했다. 1987년 일이었다.

방씨의 순탄치 않은 회사생활은 콜트악기에서도 이어졌다. 노조 지회장을 맡은 그는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회사에 반발하다가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 끌려가기도 했다.

노조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해 했던 경영진은 지난 2007년 직원 21명을 해고했다. 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던 방씨는 해고되지 않았으나 회사가 부평공장을 아예 폐쇄하고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사실상 해직 상태에 놓였다.

그리고 이들의 힘겨운 복직투쟁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법원이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데도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사람은 내쫓고 오직 이윤만을 쫓는 기업가를 법이 도와주면 안 된다”며 “옳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콜트악기 노조에 따르면 이 회사 최고경영자는 한국 부자순위 120위권에 든다. 방씨는 “전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 30%을 차지하는 동시에 차입금 의존도 0%, 금용비용 0%를 자랑하는 회사가 어렵다며 문 닫은 상황”임을 지적했다.

그는 “회사는 법정폐업은 하지 않은 채 해외공장을 통해 신상품을 쏟아내며 영업을 하고 있다”며 “이런 사례를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복직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1명 해고자를 살리기 위한 지회장 방씨의 노력은 해외원정투쟁으로 이어졌고 독일, 일본, 미국의 노동자들과 한인 교포사회의 지지도 받은 바 있다.

인정받는 기술자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로 ‘제2의 고향’ 부평에서 30년 가까이 일해 온 방씨의 한 달 수입은 금속노조에서 생활보조비로 지급받는 90만 원이 전부다.

“자고 나면 불안한 노동자의 삶은 둘 중 하나라고 봅니다. 체념하고 살든지, 아니면 싸워서 바꾸든지….”

<김연세 기자 kys@kyunghyang.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나를 바꿨듯 음악은 세상을 바꾼다”
[2010.02.04. 제797호]
임인택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
한국 노동자를 위해 직접 작곡한 노래 선보여
그처럼 신념에 가득 찬 ‘가수’를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예술인은커녕 정치인도 그를 흉내내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 그래서 불운하다는 사대주의마저 스멀거린다.
‘개념 예술인’의 부재를 넘어, 그런 가수를 빌보드 차트 1위에도 올리는 풍토에 주억댄다.


음악에 문외한인 한국의 사회부 기자는 당황한다.
세계적 기타리스트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전혀 애로가 없다. 음악까지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음악과 삶, 그리고 군살 없이 직조하는 그의 언어들이 하나인 덕분이다.
랩 메탈의 대표주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리더,
톰 모렐로(46)다.
평단은 그를 ‘행동주의 음악가’라 이른다.
연예인으로서 ‘반경’을 좁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아예 자신을 “급진 좌파”라고 몰아세운다.


포털을 검색하면 “그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게 꿈”
“창의적 기타리스트” 따위 한국 팬들의 글들이 즐비하다.
그런 그가 150명가량 모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의 한 시민단체 강당을 찾았다.
지난 1월13일 저녁 7시께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한국 노동자들을 지지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 공장에서 정의와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펜더 같은 여러 미국 브랜드의 기타들이
실제로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몇 주간 속성으로 공부를 했다.
미국에서 기타를 치는 대중이 알아야 할 사실이다.
나 같은 음악가는 메시지를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 한국 노동자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착취 등에 대한 사실도 아는가.


=다국적기업, 부자기업이 이른바 ‘밑바닥 경주’(race to the bottom)를 벌이고 있다.
더 높은 노동자 권리나 환경보호 기준을 요구하는 나라를 떠나,
저임금에 노동자 권리나 작업환경 기준이 열악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콜트·콜텍도 딱 그 경우다. 우리는 이걸 멈추고자 한다.


» 톰 모렐로
-그러나 노동자들로선 점점 더 권리를 주장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난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한다는 뜻을 밝히려 왔다. 기타는 자유를 표현하는 도구이지 착취의 수단이 아니다. 이번 투쟁은 국제적이다. 우리는 깊이 연관돼 있다. 여기 오는 것만으로 한국 노동자들이 중요한 한 발을 내디뎠다고 본다. 안 그러면 나도, 펜더도 이 문제를 알았을까. 여러 기타 소비자들도 몰랐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세계적 수준에서 우리를 착취하려 든다면, 우리도 세계적 수준에서 맞서야 한다.


모렐로의 언어는 대개 “나”(I) 대신 “우리”(We)로 시작됐다. 그러면서 “한국 노동자들은 이제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 존재를 우쭐대는 게 아니다. 당장 해결을 호언하는 것이 아니다. 끝을 함께 지켜볼 ‘동무’로 있겠다는 약속이다.

 

-노동자들이 결국 펜더 같은, 콜트에 주문생산을 하는 업체를 직접 압박하게 된다.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틀 전(1월11일) 펜더 관계자와 직접 얘기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타당하고, 사회정의 차원에서 앞장서려면 이 사건을 바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콜트·콜텍에서 만든 펜더·깁슨·아이바네즈(일본 브랜드) 등의 기타를 사지 말자고 주장하면, 많은 음악인과 젊은이들이 영향을 받을 거다. 기업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불매운동을 말하는 건가.


=일터에서 정의를 쟁취하지 못한다면,
콜트·콜텍은 물론 그들과 사업을 하는 업체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다.
펜더는 물론 다른 브랜드의 책임자와도 (관계가 있다면) 기꺼이 얘기할 거다.
펜더는 이 이슈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태를 안) 이후에도 일이 잘 전개되지 않으면
무지의 대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주 큰 (미국) 국내 문제로 발전할 테니까. 단, 이런 운동은 노동자들이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펜더나 아이바네즈에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럼 우린 이런 요구사항을 기꺼이 제안해주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실제 펜더는 법률 자문과 홍보 책임자를 내보내
지난 1월17일 오후 1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의 긴 대화가 이뤄졌다.
이들은 “이 자리를 기점으로 진상 조사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콜트·콜텍 경영진을 직접 만나볼 의향은 없는가.


=이 싸움에서 내가 갖는 강점이 있다.
내가 콜트와도 대화할 순 있지만, 그들이 신경을 쓸지 모르겠다.
그러나 펜더는 (나와 같이) 펜더를 연주하는 이들이 펜더를 사지 말자고 하면 창피해할 것이다.

 

-다른 예술인들의 사회적 관심은 적다.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료들에게 콜트 문제를 얘기하니 다들 관심을 보였다.
자기 기타는 ‘착취 공장’(sweatshop)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예술가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긴 해야 할까.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난 관심을 갖는다.
예술가들에게 단 하나의 책임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작품에 진실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느끼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관심 있는 척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반면 평화든 환경이든 노동자 이슈든 간에, 관심이 있다면 예술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처음 기타를 손에 쥔 때를 기억하나.


=(웃으며) 13살 때다. 50달러짜리 케이 기타를 선물받았다.
엄청 흥분했는데, 50달러짜리 앰프에 연결했지만 전혀 연주할 수가 없었다.
폴 매카트니의 <리브 앤드 렛 다이>(Live and Let Die)를 치려고 했는데,
그냥 줄을 튕기는 수준이었다.
‘두두두, 두두둣, 두두’ 소리를 내려고 했는데, 그냥 ‘앙앙’ 소리만 났다. 그게 첫 번째 연주였다.

 

-그냥 스크래치 아닌가.


=하하하, 소음이었다.

 

-당신에게 기타와 음악은 뭔가.


=난 기타를 선택하지 않았다. 기타가 나를 선택했다.
나는 내 신념을 예술로 엮어가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음악은 세상을 바꾼다.
내 세상부터 바꿨다. 오늘 밤, 이곳 LA에서도 음악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음악가들은 세상을 더 정의롭고 공정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다.


모렐로에게 어떻게 ‘진보주의자’가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진보보다) 왼쪽으로 더 더”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곤 어머니 메리 모렐로를 가리켰다.
이탈리아계 여성운동가다. 케냐의 독립전쟁을 이끈 은게테 은요로게가 모렐로의 아버지다.
‘좌파 유전자’란 게 있다면 모렐로의 몸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흑인계 혼혈이라는 ‘출신’과 하버드대 사회학과 졸업이란 ‘성분’이 유전자를 더 단련시켰다.


그의 언어는 중량감으로 넘쳤다.
“(이런 성장 배경 덕분에) 사다리 맨 밑에 위치한 이들 편에 서는 것이 나의 정치적 지표가 되었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음악을 만들 수 있길 열망한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시민단체 강당으로 내려가 기타를 쥐었다.
한국 노동자들을 위해 직접 작곡해서 왔다는 노래를 맨 먼저 선보였다.
<월드와이드 레벨 송>(Worldwide Rebel Song)이었다. 취지를 미리 비쳤다.
“한국이건, 아이티건, LA건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해야 혼자일 때보다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실제 이날 공연에 모렐로는 물론 미국의 유명 가수 부츠 릴리, 웨인 크레이머 등이 참석했다.
해고 노동자들을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재미동포들,
그들의 다국적 친구들, 히스패닉, 아시아 노동자도 끼어 있었다.
터무니없이 작지만, 가장 국제적인 무대였다.
LA 웨스트 8번가 3465번지에서 걸목 없는 지구 노동자의 세계 여행은
밤 12시가 넘도록 위무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미국)=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한겨레21>(797호. 2010년 2월 8일자>에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이 커버스토리로 실렸습니다.
커버스토리의 전체 제목은
"노래하라 지구노동자의 비애를
 - 다국적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노동자들과 함께 LA, 파리를 가다"입니다.


.........................................................................................................................................


노동자가 없으면 노래 없으리,
노래 없인 삶도 없으리!
[2010.02.04. 제797호]
임인택
‘허깨비 자본’의 주인을 찾아 원정투쟁 나선 해고 노동자들,
그들을 따라 간 LA와 파리에서 절망과 희망을 보다
‘자본’은 수틀리면 자르고 공장 문을 닫는다. 국외로 떠나거나 숨는 게 항공권 예약하는 일처럼 쉽다.
자본의 세계 여행은 1960년대 미국 제조업계에서부터 본격화됐다.
‘인간’은 돌아보지 않은 채 ‘이익’만 좇는 그 여행은 한국에도 수많은 피해자를 남겼다.
콜트악기의 부평 공장, 콜텍의 대전 공장, 발레오공조코리아의 천안 공장,
승림카본의 안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물 밖 물고기처럼 퍼덕대지만 메아리가 없다.
하소연이나 담판은커녕 대면조차 힘든 자본 앞에서 노동자는 절규한다.
미치지 않으려고 가방을 싼다. 자유로이 세계를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을 뒤늦게 좇는다.
도처의 지구 노동자들이 한 달 제 몸값보다 비싼 비행기삯을 마련해가며
고단한 원정 투쟁을 떠나는 까닭이다. 그 노동자들의 세계 여행을 따라가봤다. 편집자


» 미국 한인사회 시민단체 ‘우리 문화 나눔회’가 애너하임컨벤션센터 앞에서 원정투쟁을 벌이는
한국의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지지·격려하기 위해 판을 벌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쪽 도시 애너하임. 100만 명의 한인이 사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1시간 거리다.
해마다 1월이면 악기들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애너하임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남쇼’(NAMM Show)다.
신제품이 선보이고,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장식’이 되는 세계 최대 악기 박람회(1월14~17일)다.

 

 

부당해고·해고무효 판결에도 복직 안 돼


행사 내내 퀸시 존스, 오노 요코, 제이슨 므라즈, 스티비 원더를 발치 건너 마주칠 때마다
센터는 들썩거린다.
그 틈에서 무심하게 색소폰을 합주하는 부자를 만난다.
무릎을 꿇은 한 여인 앞에서 낮은 전자음으로 속삭여대는 중년 남성을 본다.


행사의 꼭짓점이 되는 1월16일 토요일 오후 5시, 1층 소형 콘서트장 주변은 북새통이다.
이름 없는 여가수의 노래에도 500여 명이 홀려 있다. 로비를 점점이 채워 지나기가 불편할 정도다.


음악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아름답게 대변한다.
악기산업 종사자, 초청객, 기자 등만 입장이 가능한 남쇼는 그 본능을 가장 우아하게 포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센터를 나서면, 바로 앞마당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메마른 ‘투쟁가’를 토해내는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을 만난다.
꿈을 깨는 ‘날벼락’ 같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예고 없이 만난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
(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가 장단 맞춰 쇳소리로 터져나온다.
인간의 본능을 처절하게 대변하는 음악들이다.


지난 1월8일 2명의 노동자가 미국 LA행 비행기에 오른다.
올해로 각각 23년·11년째 콜트·콜텍의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해온 방종운(52)·이인근(44)씨다.
하지만 그들의 일터는 실상 2007년(콜텍·대전 공장)과
2008년(콜트·경기 부평 공장)에 문을 닫았다. 마지막 노조위원장이었다.


비행기엔 두 벌 안팎의 옷가지를 챙긴 작은 가방 하나씩이 실린다.
박영호 콜트·콜텍 사장의 얼굴이 담긴 걸개그림이 실리고, 전단지와 붉은 머리띠도 여행길에 오른다.


실직자들이 ‘불순한’ 짐만 잔뜩 챙겨 이역만리를 가는 까닭엔,
12시간 비행 거리만큼이나 긴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 갖지 않는다. 낡은 노래는 1절만 재창하기도 부담이다.

1970년대 세워진 콜트악기와 자회사 콜텍은 세계 기타 생산의 30%를 차지한다.
2006년 당기순손실을 입는다.
흑자경영 10년 만이다.
2007~2008년 국내 공장을 모두 문 닫는다.
당시 콜트악기 쪽은 “경영 적자와 노사 갈등 때문에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생산은 1993년과 99년에 세운 인도네시아·중국 공장으로 넘긴다.


‘위장폐업’ 비판이 거세다.
중앙노동위원회는 해고가 부당하다고 2008년 결정한다.
2009년 법원 판결이 쏟아진다.
콜트의 해고무효확인 행정소송(2심)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준다.
민사소송(1심)도 “해고가 무효하며 원직 복직시킬 때까지 월평균 임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다.
콜텍 역시 지난해 11월 해고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을 받았다
(791호 표지이야기 ‘2009 올해의 판결’ 참조)


회사는 눈이 없고 귀가 없다.
각각 항소·상고했다.
복직투쟁 1100일이 다 되어간다.
방종운씨는 2007년 9월 이후 박영호 사장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희한한 사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노동자들이 자기 신세를 조졌다고만 하면서 완벽하게 외면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왕복 200만원 남짓이다.
20년 기타 제조 남성 숙련공의 한 달치 월급을 넘는다.
이른바 ‘원정투쟁’이다.

 

 

근로 빈곤층의 피할 수 없는 세계 여행


급히 유행이 된다.
또 다른 무리가 1월19일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발레오공조코리아(충남 천안) 해고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일터도 지난해 말 사라졌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세계 3대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가 그룹 차원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이들이 돌아오는 2월엔 승림카본(경기 안산) 해고 노동자들이 한국을 떠난다.
회사 경영권을 독일의 다국적 자본 ‘슁크’가 쥐고 있다.
노조와 갈등을 거듭하다 2007년 직장을 폐쇄했다.


사연은 다들 닮아 있다. 자본 철수 이후,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책임·윤리 경영 따위의 호소는 경영진의 귓등에도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내 경영진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거나 결정권이 없다.
권한 있는 경영진은 만날 수도 없다.
그림자도 없는 ‘허깨비 자본’은 노동자를 무력화한다.
그 때문에 발레오공조·승림카본 노동자들은 결정권 없는 국내 경영진을 넘어
그들의 ‘주인’과 직접 만나고자 한다.
국내 자본인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외국의 거래처나 고객을 직접 만나 호소하려 한다.
 근로 빈곤층의 피할 수 없는 세계 여행이 된다. 지구 노동자의 비애다.


글로벌 자본’에 맞서기엔 본래가 미약한 이들이다.
자본의 여행 속도를 좇기엔 더딘 이들이다.
기자가 현장 취재를 하겠다며 합류한 1월12일
콜트·콜텍 원정단이 숙소로 삼은 사무실 풍경은 그 대목부터 웅변했다.


현지 노동인권단체인 한인타운노동연대(KIWA·소장 대니 박)의 지원을 받아,
사무실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잔다.
샤워는 할 수 없다.
미국에선 주거지가 아닌 건물에 배수구를 만들지 않는다.



» 남쇼에 들른 여러 시민들이 한국 노동자들을 응원하며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애너하임 경찰은 1월14일 개막 당일, 앰프 사용을 금지하며 통제했다가
이튿날부터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고추장 팔고 48명의 돈을 모으고


원정투쟁에 동참한 금속노조 양득윤 부위원장, 김성상 국제국장,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도 아침저녁 세면대에 올릴 수 있는 부위만 닦는다.
홍일점으로 통역을 도맡은 재미동포 홍석종씨의 손톱엔 때가 끼어 있다.
기자의 손톱에도 정확히 이틀 뒤 때가 낀다.


방종운씨는 “처음 해외로 가는 거라 좀 설레기도 했다”고 말한다.
헛웃음을 자아낸다.
모든 여행이 각별할지언정, 노동자의 것만은 다르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48명이 돈을 모아 경비에 보탰다.
콜텍 노동자들이 고추장과 된장을 팔아 번 돈이 포함돼 있다.
콜트 해고 노동자 22명 가운데 여성이 13명이다.
낮엔 학교 급식 보조, 늦은 밤 목욕탕 청소를 해서 번 돈,
극장 청소로 번 여성 가장들의 돈도 경비에 포함돼 있다.


원정단이 몸으로 때워야 할 부채다.
다들 하루 서너 시간씩만 자며 원정시위를 버텨냈다.
아침은 때때로 굶고 점심은 햄버거로 해결한다.
방종운씨는 공수부대 시절 뱀도 잡아먹었는데,
‘미국의 전통 식량’엔 기겁했다. 햄버거를 먹지 않으려고 잠을 더 줄여 아침밥을 지었다.


귀국 때까지 한 번도 샤워를 못한 이인근씨는 아침 빗질은 거르지 않았다.
한국에선 외면받던 자신들의 사연을 들어줄 이들에 대한 최소의 예우처럼 보였다.
그리고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애너하임컨벤션센터 일대에서
하루 8시간가량 1천 장 안팎의 전단지를 돌린다.
“콜트와 거래를 중단하라!” 고함을 지른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국에 있는 동료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너무 편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우유팩 제조업체인 페트라팩(경기 여주) 해고 노동자들은 2007년 스위스로 원정투쟁을 가
석 달을 머물렀다. 천막농성을 했다. 단식투쟁도 했다.
들도 한국에 남은 동료들에게 미안해했을 것이다.


원정단의 진짜 고통은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데 있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의 원정투쟁은 이번이 세 번째다.
복직투쟁을 하는 100여 명 노동자 가운데 4명이 참가했다.


‘고단한 여행’의 속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이 처음 여행가방을 싼 건 지난해 11월23일이다. 일본행이다.
10월23일 일본 발레오 본사가 주주총회를 통해 회사 청산 계획을 일방 통보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180명 노동자 전원에게 문자와 퀵서비스로 해고가 통보된다.
노조의 거센 반발에, 본사 책임자는 청산인을 대신해 노동자들과 면담하겠다며 11월17일 한국에 왔다.
하지만 공장 내 시위 현수막 등을 거두지 않았다며 돌아가버렸다.


노동자가 갔다.
일본에서 본사 경영진과의 면담이 성사됐으나 “청산을 철회할 의지는 전혀 없다”는
입장만 재확인했다.
“발레오공조코리아는 경쟁력이 없고 고용승계 책임이 우리한테 없다”는 얘기는
2004년 공장을 인수할 당시의 태도와 너무 다르다.
지난해 12월 프랑스의 발레오그룹 본사로 향했다.
겨우 만난 경영진은 “위로금·재취업 등
후속 작업에 대한 교섭 권한을 한국 쪽 전 경영진에 맡겼다”고 말했다.
축구공처럼 돌려차인 셈이다.


이번 원정은 1월31일까지다.
파리 내 한인 민박집에서 머문다.
2차 원정 때와 달리, 그룹 경영진은 면담 자체를 거부한다.
현지 시민단체들의 호응도 기대에 못 미친다.
원정투쟁에 동참한 정원영 민주노총 충남본부장은
“공장 해외 이전 등의 문제가 이곳에서도 심각하지만,
우리와 달리 실직자한테 구직 때까지 지원금을 주거나 각종 세금 혜택을 통해
구직자와 실직자의 소득차가 적기 때문에 사회적 쟁점이 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원정단은 아침 6시께 일어나, 이탈리아산 쌀로 아침밥을 꼬박꼬박 지어 먹는다.
그래야 본사까지 40여 분을 걷고, 해 질 때까지 시위를 하며 지지도 요청할 수 있다.


애너하임에서 만난 레오 제라드 전미철강노조 국제위원장의 말은 그래서 무게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한 나라 문제가 다른 나라 문제가 된다.
국제적으로 연대하지 않으면 자본은 더 가난한 국가로 이동하며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되고 커진다.”

 

 

최대 거래처 펜더, 진상 조사 착수


발레오는 전세계 사업장에서 올해 1천 명을 추가 감축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 갈등이 야기될지 내다보기 어렵다.
다만 그것이 한국 노동자의 문제로까지 엮인다는 건 분명하다.
원정단은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 공장에 대한) 발레오 쪽 입장이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전망한다.


반면 콜트·콜텍 원정단은 펜더(FMIC)가 ‘진상 조사’에 착수토록 이끌어냈다.
미국 제1의 기타 브랜드로, 콜트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하청을 주는 최대 거래처다.
원정 일정 마지막 날인 1월17일 펜더의 법률담당 마크 밴 블릿과 홍보담당 제이슨 파지트는
“당장 콜트에 준 주문을 중단할 순 없다”면서도
“(콜트의 노동 착취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아달라”고
전했다.
블릿은 이후 콜트·콜텍 쪽 의견을 듣고 객관적인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본래 다른 약속이 있는데,
대표가 이 자리에 꼭 참석한 뒤 내용을 직보해달라고 지시해서 왔다”고도 말했다.


만남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다. 콜트는 법원 판결도 거부했다.
자본은 오직 자본에만 복속한다는 태도다. 그런 콜트가 ‘갑’으로 삼는 가장 큰 ‘자본’을 만난 것이다.


세계적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펜더에 편지를 보냈다.
남쇼에서 전단지를 받아든 여러 악기상도 펜더에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LA 등지 100여 개 인권단체와 노조도 원정투쟁단에 지지의 뜻을 밝혔다.


» 발레오공조코리아 원정단은 7명으로 꾸려졌다.
한국 노동자의 원정투쟁 소식을 접하고 발레오 그룹 본사 앞까지 찾아와 연대를 표명한
프랑스 솔리데어 노총 활동가에게 금속노조 정혜원 국제부장이 최근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진짜 힘은 자본보다 ‘소비시민’에게서 구해진다.
지난 1월14일 한 여인이 대뜸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다가오더니 “이곳에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6년째 악기점 두 곳을 운영하는 크리스틴 스피아크다.
“기타 같은 악기는 겉은 화려하고 예쁜데 속은 안 그런 경우가 많다”며
“크래프터 같은 한국 브랜드를 팔고 있는데, 콜트는 앞으로도 취급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국내에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연대다.

 

 

뜻밖의 힘을 만나다


일본 기타 브랜드 ESP의 사장과 부사장은 시위 중인 원정단을 직접 찾아와
“우린 콜트·콜텍과 상관없으니 플래카드에 넣은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맷 매시안다로 사장은 “콜트 쪽과 만난 적은 있지만, 신뢰가 가지 않아 거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심 없는 연대는 불가능하다.
톰 모렐로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원정단이 준비한 전단지를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물었다. “(2007년 분신을 시도한 이동호씨가) 정말 분신했느냐, 죽었느냐?”
“한국의 법은 뭘 하고 있느냐?”


독일 악기제조업체 ICM의 지그프리트 아커는
“1980년대 OEM을 주며 콜트 공장에 여러 차례 가봤다”며
“OEM을 주면 어디든 프로젝트 매니저가 현지 공장을 가보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펜더가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일러준다.


더 내밀한 관심들이 있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고 연일 수면이 부족해 원정단은 예제없이 고통을 호소했다.
유학 중인 한의사 우호창씨가 이들을 챙겼다.
하루, 이틀 걸러 늦은 밤 숙소인 KIWA 사무실을 찾아 침을 꽂았다.
KIWA의 대니 박 소장이나 윤우찬 목사 등은 아침저녁으로 왕복 2시간 거리의 애너하임으로
원정단을 태워다줬다.
여러 교민이 저녁마다 식사를 대접했다.
상당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차린 시민분향소를 계기로 어울렸다.
정치·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길 주저하던 이들이었다.
덕분에 진보 시민세력의 외연이 조금씩, 대신 더 견고하게 확산 중이다.
양득윤 부위원장은 “교민들이 없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못했다”고 잘라 말한다.


남쇼 행사장 내 콜트 부스는 중급 규모다.
그러나 1월16일만큼은 어느 브랜드의 부스보다 붐볐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진 시먼스(그룹 키스)가 콜트 기타를 사용하기로 하며
홍보 행사에 참여한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콜트 직원들이 시먼스 인터뷰는 물론,
줄 서 기다리는 이들과의 인터뷰도 방해했다.
서진모 해외영업팀 과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그걸 말해서 나쁜 이미지를 주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직원은
“내가 아는 열에 여덟은 (원정시위 때문에) 한국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한다”며
“(기자)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회사 망하고 일자리를 잃으면 어쩔 거냐”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결락 없이 모두를 이해했으나,
가장 불편하고 본데없는 언어였다.
이미 오래전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센터 밖에서 시위를 잠시 멈추고
점심용 햄버거를 먹고 있었을 낮 1시께다.


콜트는 미국 법인 웨스트하이머를 통해 현지 유통이 된다.
이곳 대표 잭 웨스트하이머는 “밖에 (시위하는) 몇 명이 있는 걸 안다”며
“그들과 만나 얘기할 뜻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번 한국의 작업장을 가봤는데, 노동법을 잘 지키는 기업이었다.
그들이 극단적으로 얘기한다”고도 말했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진 시먼스를 붙잡고 ‘콜트 문제’를 겨우 물었다.
“너도, 나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시먼스의 답은 그를 우상으로 삼았다는 톰 모렐로의 것만큼이나 명료했다.
공인으로서 관심을 둬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건 너무 시적인 말”이라며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자를 수 있고,
그만둘 수도 있고, 그럼 다른 직업을 구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본과 음악의 견고한 결합이었다.


실제 콜트 쪽은 철저히 원정투쟁단을 외면했다.
단 한 차례 대응이 있었다.
콜트 원정투쟁을 방송한 현지 라디오 프로그램에 반론 보도를 요청한 것이다.
그 또한 명료했다.
“(이 시위엔) 금속노조가 배후 세력이고 그들(방종운·이인근씨)은 콜트·콜텍의 노동자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탈제조업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산업 수요를 예측하고 정부 차원의 인력 조정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적 대응으로 꼽혀왔다.
산업연구원은 2005년 이를 담당할 기구로 국가경쟁력위원회 창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페트라팩 원정투쟁에 동참했던 화학섬유연맹 정기진 조직국장은
“구제금융 위기 이후 수많은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와 혜택을 받고 이익을 챙겼지만,
정작 자본이나 공장이 철수할 때 받는 규제는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다들 2000년 초반부터 되풀이되던 얘기다. 노동자들 처지는 달라진 게 없다.


1월16일 애너하임컨벤션센터 앞. 오후 5시30분을 넘어서며 해는
마지막 볕 하나를 겨우 붙들고 있다.
한 백인 남성이 원정단에게 다가왔다.
조심스레 “당신들이 시위에 쓰던 그림을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다.
허리춤까지 오는 거추장스런 소품을 들고 가는 그를 붙잡았다.
크리스 프레이슈(42)는 이유를 묻자
“학생들한테 부당한 노동 현실에 대해 가르칠 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 동부 샌프란시스코에서 7년째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진실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상품이 저렴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이 반드시 숨어 있다.”


물론 프레이슈에게 콜트·콜텍은 그 범주조차 넘어선다.
“(해고나 공장 폐쇄 등은) 인간적으로 옳지 않다.”
함께 남쇼를 찾은 토비 하월(36·LA 중학교 교사)도 같은 그림을 갖고 있다.
두 개의 그림 중 하나를 그가 먼저 챙긴 것이다.
얇은 널빤지엔 기타를 몸통으로 삼은 노동자의 판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일하고 싶다.”
한마디가 더해져 있다.

 

 

미국 중학생에 보낼 ‘새 반론’은


연대는 저 홀로 분열하고 자라는 세포가 된다.
이제 LA와 샌프란스시코의 중학생들도 콜트·콜텍의 경영윤리를 알게 될 것이다.
콜트·콜텍은 훗날 이들을 위한 ‘새 반론’을 내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정단이 모두 떠난 1월18일 화창하던 캘리포니아 날씨는 돌변했다.
10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다렸다는 듯 차가워졌다. 도시는 종일 윙윙댔다.
이번 원정투쟁에 하늘의 연대도 있었음을 원정단은 알지 못한 채
여행가방을 꾸려 고국으로 돌아갔다.




로스앤젤레스·애너하임(미국)=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파리(프랑스)=정원영 민주노총 충남본부장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탐 모렐로가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음악 웹진인 <Music Radar>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기타, 기타리스트와 관련된 출판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아래의 주소로 가시면 <Music Radar>의 인터뷰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usicradar.com/news/guitars/rages-tom-morello-leads-protest-at-namm-show-232325/

문화연대 나영활동가님이 기사를 번역해 주셨습니다. 박수!!! ^^

........................................................................................................................................


Rage's Tom Morello leads protest

at NAMM Show


He joins Serj Tankian in Korean workers' fight


Joe Bosso
, Wed 13 Jan 2010, 9:47 pm UTC

 
Rage's Tom Morello leads protest at NAMM Show

Morello's got a guitar and he's learned how to make it talk (© © Jared Milgrim/Corbis)


View in gallery


Tom Morello, guitarist for Rage Against The Machine and Street Sweeper Social Club, likes to stir things up. Hot off the heels of his stunning win for the No. 1 Xmas single in the UK with Rage's Killing In The Name, the modern-day Pete Seeger is looking to throw the 2010 NAMM Show for a loop.

Rage Against The Machine Street Sweeper Social Club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무언가 고무시키기를 좋아한다. Rage의 Killing In The Name으로 영국에서 최고의 크리스마스 싱글을 거머쥔 멋진 승리의 따끈따끈한 뒤끝에서, 현대판 Pete Seeger는 2010 NAMM 쇼를 완전히 정복해버릴 것으로 기대된다. 

Morello and System Of A Down frontman Serg Tankian (both partners in the Axis Of Justice) are joining representatives of Korean guitar workers in a protest against Cort Guitars, whom they say fired all of its Korean workers and closed all of its Korean plants in 2007 to "avoid paying proper wages" and to "fix deplorable working conditions."

모렐로와 System Of A Down의 리더 Serg Tankian는 (두 사람은 the Axis Of Justice-탐 모렐로와 Serg Tankian이 만든 비영리 단체-에서 동료이다) "적정 임금의 지급을 회피하고""개탄스러운 작업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2007년에 한국 공장을 모두 폐쇄해 버렸다고 하는 콜트 기타에 대한 반대 집회에서 한국 기타 노동자들의 대변인으로 참여했다. 

Cort has been the Korean equipment manufacturer of popular American companies like Gibson, Fender and Ibanez.

콜트는 깁슨, 펜더, 이바네즈와 같은 유명한 미국 회사들의 한국 설비공장이었다. 

"Guitars should be a means to liberation, not exploitation," said Morello. "I fully support the Korean workers' demands for justice in the workplace. All American guitar manufacturers and the people that play them should hold Cort accountable for the awful way they have treated their workers. Without us, they go out of business. Simple as that. No one should have their job taken away because they stand up for their rights."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모렐로는 말한다. "나는 한국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의 정의를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지지한다. 모든 미국 기타 공장들과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노동자들을 대해왔던 끔찍한 방법들을 해명할 책임이 있는 콜트를 중단시켜야 한다. 우리 없이는, 그들은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렇게 간단히, 누구도 그들의 직업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Guitars should be a means to liberation, not exploitation. No one should have their job taken away because they stand up for their rights" Tom Morello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누구도 그들의 직업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Tom Morello

Morello told MusicRadar that he recently called Fender to make them aware of the situation. "They didn't seem to have any knowledge that this had gone on," he said. "I would think that if the people at Fender, Gibson and Ibanez step up, they can help fix the matter."

모렐로는 그가 최근에 펜더 측에 그러한 상황을 인식할 것을 요구했던 MusicRadar(음악인들의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진행되어 왔던 것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만약 내가 펜더, 깁슨, 이바네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더 나아가,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According to Sukjong Hong, US Coordinator for Cort Action, who sent a letter to Fender on behalf of Cort and Cor-tek Guitar Workers, along with the Korean Metal Workers Union, "Fender indicated that they were taking the matter very seriously and would conduct an investigation." Hong said that a meeting had been set with Fender representatives for this Sunday, 17 January.

한국 금속노조와 마찬가지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지지 차원에서 펜더에 편지를 보냈던 콜트 액션의 미국 코디네이터 홍석종 씨에 의하면, "펜더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조사에 착수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한다. 홍씨는 이번 일요일인 1월 17일에 펜더측 대변인들과 함께할 미팅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Morello, both as The Nightwatchman and in a Street Sweeper Social Club acoustic performance, will headline a protest concert to be held tonight (13th January) at the Nanum Cultural Center in Los Angeles.

The Nightwatchman이자 Street Sweeper Social Club 어쿠스틱 연주자인 모렐로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나눔문화센터에서 오늘밤(1월 13일)에 열리는 저항 콘서트에서 주 공연자로 나올 예정이다. 

"I've even written a brand-new song for the occasion called Worldwide Rebel Songs," he said. "It's a number about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a reminder that we're all in this together."

"나는 이 때를 위해 Worldwide Rebel Song이라 부르는 신곡을 써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국제 연대에 대한 노래이고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함께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노래이다."

When asked what kind of guitar he would be playing for the concert, Morello chuckled and said, "I'm definitely going to be performing with a guitar that was made when all of these good people were fully employed,"

콘서트에서 그가 어떤 종류의 기타를 연주할 것인지를 묻자, 모렐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분명히 이런 훌륭한 사람들 모두가 완전히 고용되었을 때 만들어진 기타로 연주하게 될 것이다."

MusicRadar has contacted Cort Guitars for a response to this matter. As of press time, no calls have been returned.

MusicRadar는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받기 위해 콜트 기타에 연락을 해왔다. 발행시간까지, 어떠한 연락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RATM> 멤버)가
콜트콜텍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Southern California Public Radio>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미국의 전역에 방송되는, 대표적인 라디오 네트워크인 NPR을 통해 송출되었습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탐 모렐로의 콜트콜텍 관련 인터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cpr.org/news/2010/01/14/tom-morello-plays-concert-korean-guitar-workers/


문화연대 나영활동가님이 기사를 번역해 주셨습니다. 박수 짝짝짝


.......................................................................................................................................

Tom Morello Plays Concert for Korean Guitar Workers

탐 모렐로, 한국의 기타 노동자들을 위해 연주하다.

Kevin Winter/Getty Images
Musician Tom Morello performs onstage during the Rock A Little, Feed Alot benefit concert held at Club Nokia on September 29, 2009 in Los Angeles, California. File photo.
Jan. 14, 2010 | Alex Cohen | KPCC

Download

This week guitarist Tom Morello of Rage Against the Machine performed at the KIWA Cultural Center in Los Angeles to raise money and awareness for a group of Korean guitar workers. 

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이번 주에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KIWA 문화센터에서 한국 기타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을 했다.

The workers were once employed at Cort and Cor-Tek. There they built guitars for American companies like Fender, Gibson and Ibanez. But, Morello says, they had poor working conditions.

노동자들은 콜트와 콜텍에 고용되었었다. 그들은 미국의 펜더, 깁슨 그리고 이바네즈와 같은 기타를 만들었지만 모렐로는 그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었다고 말한다.

........................................................................................................................................
"When the workers organized in 2006, formed a union and began demanding more justice and dignity in the workplace," Morello says, "the company fired everyone wholesale, shut the factory and moved them to China."

“2006년에 노동자들이 조직되자,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작업장에서의 공정성과 존엄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 모렐로는 말한다 “회사는 그들 모두를 해고하였고 공장의 문을 닫고 중국으로 이전하였다”

A group of the Korean workers decided to take their case directly to American instrument makers. They traveled to Anaheim for the annual National Association of Music and Merchants trade show.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사례를 가지고 직접 미국의 악기 생산자들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매년 진행되는 National Association of Music and Merchants trade show를 위해 Anaheim까지 여행을 했다.

Tom Morello called on musician friends like Wayne Kramer of MC5 and held a concert to raise awareness of their plight. The concert was free though they asked the audience for donations which was originally intended to go to the Korean guitar makers. But they decided instead to give the money to earthquake relief efforts in Haiti.

탐 모렐로는 MC5의 웨인 크레이머와 같은 뮤지션 친구들을 불러 그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콘서트를 열었다. 청중들에게는 원래 한국의 기타 생산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금을 요청했지만 콘서트는 무료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금을 아이티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진 구호를 위한 활동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Morello was so moved by their generosity that he wrote a new song called "Worldwide Rebel Song." To hear the lyrics, listen to his interview with KPCC's Alex Cohen.

모렐로는 그가 “Worldwide Rebel Song(전 세계적인 반란자의 노래)"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곡에 썼던 그들의 관대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가사를 들으려면, KPCC의 알렉스 코헨과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된다.

A statement from Fender says the company has offered to meet with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Workers Metal Union next week to "better understand their claims against Cort and Cor-Tek." The company says it's also contacting related vendors, suppliers, dealers and other business partners to make sure the company has a full-view of the facts.

펜더 측의 주장에 따르면, “콜트/콜텍에 대항하는 그들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 주에 한국 금속노조 대표자들과의 만남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들은 또 한 회사 측은 자신들이 사실들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판매사, 공급자, 중개인들 및 다른 사업 파트너들과도 연계하여 연락을 하겠다고 밝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10년 뒤 한국사회는 또다시 두 개의 국가로 나눠질지 모른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는 엄격한 계급사회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인종적 특징을 타고 났을 뿐, 먹고 마시고 입고 살고 교육받고 놀고 즐기는 문화가 완전히 다른 한국 사회의 상위 10%와 나머지 90%의 삶은 너무나 견고한 벽으로 둘러쌓여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벽을 뚫기 어렵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하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 하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라고 불리기를 꺼려하고, 노동조합의 파업에 적대적이며,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이 오르기만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결국 주류의 패러다임경도되어 승자독식의 체제를 끊임없이 강화시켜줄 뿐이다.

가령 서울의 서북부나 동북부에 사는 사람들이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이 덩달아 오르기를 바란다고 치자. 그래서 자신들이 사는 변방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다 한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왜냐하면 다함께 급등한 아파트 가격으로 인해 결국 그들의 자녀들은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하지 못하는 미래를 맞아 변두리 도시로 쫓겨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화평론가 L의 주장처럼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신화, 그것은 어쩌다 길거리에서 정치적 유인물을 나눠 줄때도 금세 확인된다. 유인물을 가장 받지 않는 부류는 바로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자신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계없고, 용산참사와 무관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들의 오해와 그 오해를 작동시키는 사회정치문화의 패러다임은 한국 사회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에 대한 답변을 완성시켜준다.

밴드 잠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독립해 활동중인 잔뼈 굵은 인디 뮤지션 소히의 곡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는 바로 이러한 한국사회의 모순같은 현실을 자신의 생생한 체험으로 담아낸 곡이다. 지난 해 초봄 억울하게 직장에서 쫓겨난 콜트콜텍기타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한강 양화대교 옆 고수부지 송전탑에 올라가고 그 곁에서 작은 공연을 했을 때, 그들의 절박함과는 무관하게 어떤 사람들은 그저 조깅을 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든 사회적 문제에 다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안간힘을 다해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 싸우는데 어떤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며 그녀는 송전탑에 올라간 사람과 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동시에 사람들의 무심함과 외면에 깊이 상처 받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것이 우리의 현실일것이다. 민중가요 음악인은 아니지만 지난 2년동안 촛불집회와 용산참사, 콜트콜텍기타 노동조합의 활동현장 등에 기꺼이 달려와서 자신의 1집에 담긴 따뜻한 노래들을 부르곤 했던 뮤지션 소히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놓치지 않고 노래함으로써 2009년의 한국사회를 아프게 증언해냈다. 누군가가 해고당하고,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그 일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민중가요 음악인들이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승리에 대한 다짐에 주로 매달림으로써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오늘을 오히려 이념적으로는 덜 철저하고 경험도 더 적을지도 모르는 그녀가 더 정확하게 기록해낸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그녀가 지난 2년동안 이런 저런 문제적 현장에 자주 와서 소박한 마음 하나만으로 노래하고 가면서 현실을 가감없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일것이다.

그리하여 어쿠스틱 기타와 미디로 찍은 드럼과 이펙트 사운드가 만들어 낸 투명하면서도 다소 몽롱한 사운드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리얼한 그녀의 시선이다. 바로 그녀가 절감한 현실 인식의 차이와 무심함과 얄팍한 사회적 연대에 대한 탄식과 비애이다. 이처럼 현실을 냉정하게 기록하고 진심을 다해 표현해내는 것은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역할이며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해도 좋은 노래는 다시 우리를 멈추지 않게, 아니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노래의 힘이다. 뮤지션 소히가 보내온 편지를 덧붙인다.



"작년 봄, 겨울이 채 끝나기 전의 싸늘한 날씨에 양화대교 옆 한강 고수부지 송전탑에서 조그마한 공연이 하나 있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부당 해고한 회사에 맞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자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 올라갔고 그 탑 옆에서 작은 공연과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가진 것이다. 내게 그 광경과 기억은 참 특별했다. 서늘한 날씨였는데, 위에 올라간 분들의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긴 줄을 이용해 공급했고 나머지 분들은 옆의 큰 천막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내 노래를 듣는 이는 서너 명만 빼고는 모두 콜트 노동자들이었고, 공연 하는 곳 옆을 동네 주민들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며 지나갔다. 그렇게 답답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디든 위로 올라가야 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뿐만 아니라 용산도 그랬고 쌍용자동차도 그랬다. 그래야 사람들이 봐주니까. 관심 가져주니까.

송전탑 위에서 용산을 바라보는 걸 상상해 보았다. 점점 더 욕심내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서글퍼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울고 있는 것을…. 부자든 해고당한 사람이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든 모두 한강을 보며 살게 되었지만 참 다른 삶이다. 우리는 마치 각자의 삶인 양 살고 있지만 교묘하게 뺏고 빼앗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교묘함을 가리고 있는 것이 사회와 정부다. 그리고 가려진 장막 사이로 유유히 한강변을 운동하며 지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재판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지만 아직도 그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에게 못할 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긴 시간 지나지 않아도, 법이 재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인간성 회복의 시대가 어서 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짜투리 마음이라도 내어 줄 수 있는 공존의 시대도 어서 열리길 빈다."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작사/작곡/노래/연주 소히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그 위에선 누굴 위한건지
폐허들이 보였어
폐허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법 앞에서만 고갤 떨구는
사람들도 보였어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송전탑 옆을 지나 조깅하는
사람들도 보였어
그들은 여기
사람 사는지도 몰라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
시간 지나가도
잊혀질 수 없어
긴 시간 정말 힘들었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한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덧붙임 노래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4163024 기사의 본 링크에 가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미국 원정투쟁단 기자회견
ⓒ 이찬행
콜트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 해외 이전과 위장 폐업 및 정리 해고에 맞서 지난 1천여 일 동안 수많은 거리 농성, 송전탑 고공 투쟁, 단식 투쟁, 문화예술인들과의 연대 투쟁을 벌여왔던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오는 14일 개막하는 '미국 애너하임 NAMM Show 2010'에 참여하는 업체들과 예술인들을 상대로 해외 원정투쟁을 시작했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주식회사 콜트와 주식회사 콜텍은 노사 갈등을 핑계로 한국의 생산라인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무노조와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 공장을 설립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들을 해고한 바 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공장 폐쇄와 정리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사측은 아직까지도 성의있는 교섭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LA에 도착한 미국 원정투쟁단(단장 양득윤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현지 도착과 동시에 진보적인 성향의 라디오인 KPFK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상과 같은 콜트콜텍의 태도와 그동안의 투쟁 경과 및 미국 원정투쟁의 의의를 설명했으며 12일에는 언론사들을 상대로 기자 회견을 가졌다.

 

미국으로 간 콜트콜텍 노동자들 "위장폐업 철회! 공장 정상화!"

 

  
김성상 금속노조 국제국장의 할리우드 거리캠페인
ⓒ 이원재
콜트

 

23년 동안 공작반에서 기타를 만들었던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이 공들여 만들었던 기타가 노동의 아픔과 고단함을 달래주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를 향한 배반의 무기가 되어버린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위장 폐업 철회와 공장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현재 대학교 3학년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두고 있는 방종운 지회장은 "자식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해고되어 그동안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모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콜트콜텍의 박영호 사장은 자신의 부를 쌓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지 말라"고 주장했다.

 

콜텍에서 1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던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은 "지난 3년 동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으나 자본의 양보를 받아내는 데 역부족이었다"면서 "새로운 투쟁 전략의 일환으로 해외 바이어들을 상대로 압박 투쟁을 벌이게 됐다"고 이번 원정투정의 목적을 설명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이인근 지회장은 "양화대교 북단에서 30일간의 송전탑 고공 투쟁을 벌이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콜트콜텍의 횡포와 부당행위에 맞서 싸웠으나 최근에는 살고 있던 아파트마저 팔고 대전 시내의 월세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고 이로인해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고 있는 아내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뮤직 메세, 일본 요코하마 국제악기박람회에 이어 세 번째인 미국 애너하임 해외 원정투쟁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12일 기자회견에는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LA 지역의 청소부들을 위한 지원 단체인 MCTF(Maintenance Cooperation Trust Fund)의 릴리아 가르시아 소장도 참석했다. 가르시아 소장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면서 "콜트콜텍은 노동자들에게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득윤 단장은 "이번 투쟁이 실패로 끝난다면 한국의 중소 단위 사업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동탄압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금속노조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양득윤 단장은 또한 자본의 해외 이탈과 노동의 국제 단결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으로 도망오는 다국적 자본에 대해서도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원정투쟁단 할리우드 지역 거리캠페인
ⓒ 이원재
콜트

 

록밴드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의 지지 "기타는 착취의 수단 아냐"

 

지난 7일 미국에 도착한 원정투쟁단은 현지 동포 단체들과의 연대 구축이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KIWA(한인타운노동연대), 우리문화나눔회, LA 민주노동당 후원회, 좋은 세상을 가꾸는 사람들 등 재미 동포 단체들과 연대함으로써 원정투쟁단은 콜트콜텍 문제를 해외에 알리고 이를 통해 사측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12일 기자회견에서 연대사를 발표한 LA 민주노동당 후원회 이용식 회장은 "기업의 윤리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으며 노동을 착취하고 자본 이탈을 일삼는 집단에 맞서 싸우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재미 동포 단체들 이외에도 원정투쟁단은 지금까지 미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과 서비스노조국제연맹(SEIU)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미국 애너하임 NAMM Show 2010' 행사장인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노동조합의 지지도 확보했다.

 

  
락 그룹 RATM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
ⓒ 위키피디아
콜트

특히 록그룹 '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의 공식 지지와 연대는 원정투쟁단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탐 모렐로는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해방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면서 "작업장에서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한국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탐 모렐로는 또한 콜트콜텍의 중요한 파트너인 기타 제조업체 '휀더(Fender)'에 연락을 취해 원정투쟁단과 17일 경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으며 '휀더'는 원정투쟁단에 보낸 공문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빨간도둑
이전버튼 1 2 3 4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문화행동 블로그
빨간도둑
Yesterday18
Today13
Total118,655

달력

 « |  » 2017.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